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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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청계서원(淸溪書院)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 168번지 진주성내
   정신열(鄭臣烈) 정천익(鄭天益)
   1833년(순조 33)
   
   음력 3월 15일
   

청계서원은 1833(순조 33)에 건립되었으며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은열공(殷烈公정신열(鄭臣烈),고려 말 물레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따뜻한 목면(木棉목화옷을 입게 한 문충공(文忠公정천익(鄭天益)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이다.두 분은 각각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 진양군(晋陽君)에 봉해졌다본래 대평면 마동에 건립되었으나, 1868(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된 것을 1961년에 지금의 자리에 복원하였다.

1961년 후손들이 이곳에 복원사업을 시작하여 경덕사와 정교당을 건립봉남서당이란 이름으로 그 맥을 이어오다가 1986년부터1993년까지 숭은사와 진사청을 재건청계서원으로 복원되어 매년 음력 3월 15일 사당에서 제향을 올리고 있다.

 

1)주벽-정신열(鄭臣烈)

()는 관정(官亭), 시호(諡號)는 은열(殷烈), 고려 현종(顯宗때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이르렀으며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에 봉하여졌고 성리학(性理學연구에 전념하여 불교(佛敎)를 배척(排斥)하였다.

 

2)정천익(鄭天益1294~       )

고려공민왕때 중정대부(4사재령을 거쳐 전객령(3)과 판부사(2품판개성부사)를 지내시고 공민왕12(1363)에 왕의 윤허로 치사관(致仕官)이되어 단성 사월리 고택에 돌아오셨는데 그때 년세가 70세였다.4년이고 1364년봄에 사위 문익점(文益漸)이 원나라에 서장관으로 갔다가 귀국하면서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온 목면종자를 심어 3년간의 노력 끝에 재배법을 터득하여 종자를 널리 보급하였다.

씨를 뽑는 씨아(取子車)와 실을 뽑는 물레(繅絲車)를 모두 정천익이 창제했다.

목면을 처음심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를 국가문화재 사적 제108호 목면시배유지(木棉始培遺址)로 지정되었다. 

퇴헌선생이 돌아가시기 전에 불교책을 발간키 위해 큰재물을 기부하였으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최영 영상 살해등 혼란기를거쳐 조선이 건국된후 태조때 퇴헌선생의 손자 정양(고려의 정4품 군기시소윤)의 주도로 불교책이 발간되었는데 그 서문을 태조의 친구로 개국공신 영의정 의령부원군 남재가 쓴 서문에 사재령치사 정천익선생의 뜻에 따라 이책을 발간하게되었다고 기록되어있고 현재 국보로 국립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경내의 서쪽 경덕사(景德祠)에는 은열공 정신열의 위패를동쪽 숭은사(崇恩祠)에는 문충공 정천익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고 있다. 1986년부터 1993년까지 숭은사와 진사청을 재건청계서원으로 복원되어 매년 음력 3월 15일 사당에서 제향을 올리고 있다.

정문에 걸어 놓은 청계서원(淸溪書院) 간판과 숭은사(崇恩祠)의 현판과 숭은사 내삼문인 혜민문(惠民門)이라는 현판은 모두 후손인 계산 정창훈이 쓰서 사비로 제작하여 부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