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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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도계서원(道溪書院)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 546
   이 숙(李 潚) 이휴복(李休復) 박진영(朴震英) 조익도(趙益道)
   1780년(정조 4)
   
   불향
   조익도공신록권 및 교지(趙益道功臣錄券및敎旨)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47호(1999.08.03지정) 회찬송악악무목왕정충록(會纂宋岳顎武穆王精忠錄)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46호(1999.08.03지정)
도계서원은 군 서쪽 10리 지점인 파수리 원촌동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이숙(李潚), 이휴복(李休復), 박진영(朴震英), 조익도(趙益道) 등 네 사람을 향사하기 위하여 1780년(정조 4)에 창건되었다. 그 후 1871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는데 현재 원촌마을에 거주하는 이양숙 씨 주택 부근으로 추정된다. 유허비만 남아있다.

1)주벽-이숙(李潚, 1550~1615)
명종 5년 함안에서 출생하였으며 자는 여등(汝燈), 호는 갈촌(葛村)이다. 선조 9년 알성무과에 합격하였으며, 동왕 24년에 제포만호에 임명되어 경상감사 김수(金晬)의 막하에서 왜병의 격퇴에 공을 세웠다. 이숙은 충성스러운 무신으로 임란 때는 곽재우 장군과 함께 적을 격퇴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정기룡장군과 함께 적을 토벌하여 선무공신에 녹훈되었다. 재란 후 영산현감, 합천군수에 임명되었으나 북인들을 등용함에 불복하여 물러나와 은거하며 정구, 장현광과 친교한 충성스럽고 어진 선비였다.
 
2)이휴복(李休復, 1568~1624)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사장(士長), 호는 양졸정(養拙亭). 좌참찬 문화(文和)의 8세손이며, 아버지는 판서 인(寅)이다. 박제인(朴齊仁)의 문인이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1606년(선조 39)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순천부사(順天府使)를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관군 별장(別將)으로 안현(鞍峴)에서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호산군(壺山君)에 봉하여지고 그가 죽은 뒤 정사공신(靖社功臣)을 책훈(策勳)하여 관작을 추증한다는 뜻으로 예조에서 제문을 지어 치제(致祭)하였다. 호조판서에 추증되고, 함안 도천사(道川祠)·도계서원(道溪書院)에 제향되었다.
 
3)박진영(朴震英, 1569~1641)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실재(實哉), 호는 광서(匡西). 아버지는 판서 오(旿)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군수 유숭인(柳崇仁)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적을 쳤다. 1599년 임진왜란 때의 공으로 용궁현감(龍宮縣監)이 된 뒤 10여년간 천거하는 자가 없어 제부(諸府)의 판관에 머무르다가 1613년(광해군 5) 경흥도호부사가 되어 변방을 방어하는 데 공을 세워 절충장군으로 승진, 1619년 순천군수를 지내면서 우영장을 겸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해서도방어사로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별장으로 종군하였다. 이괄이 이 소식을 듣고 원수부의 여러 장수 중에 오직 남이흥(南以興)·박진영·유효걸(柳孝傑) 뿐이라고 하여 그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신경원(辛景瑗)과 힘을 합하여 동교(東郊)에서 이괄의 군대를 크게 격파하여 공을 세웠으나 공신에 녹훈되지는 못하였다. 뒤에 평산도호부사(平山都護府使)가 되어 해서방어사를 겸임하다가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시호는 무숙(武肅)이다.
 
4)조익도(趙益道, 1585~1624)
자는 여행이며, 선조 18년(1585)에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였고 이괄의 막하에 있었으나 갑자년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므로 이에 맞서 싸우다 세상을 떠났다. 이에 조정에서 원종훈(原從勳)을 내렸으며, 영조 때는 악무목정충록(岳武穆精忠錄)을 하사하고 병조참의로 증직했다.

서원이 훼철된 후 유허비만 남아있다. 원촌마을을 서원마을이라고도 부르는데 우물터의 흔적 와편 등이 흩어져 있어 서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조익도공신록권및교지(趙益道功臣錄券및敎旨)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47호(1999.08.03지정)
조선 광해군과 인조 때에 여러 공을 세운 조익도에게 내린 교지와 공신록권이다. 2책의 공신록권 가운데 하나는 1613년(광해군 5) 대북파가 소북파를 없애려고 김직재 등을 모반혐의로 처형시킨 공으로 그 이듬해 내린 「형난원종공신록권」이고, 다른 하나는 1624년(인조 2)에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인조 3년(1625)에 내린 「진무원정공신록권」이다.
 
2)회찬송악악무목왕정충록(會纂宋岳顎武穆王精忠錄)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46호(1999.08.03지정)
정충록은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중국 송나라의 신하 악비(岳飛)의 행적을 그림을 그려 만든 것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1584년(선조 17)에 간행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없어지고 1709년(숙종 35)에 다시 펴내었으며 1769년(영조 45)에 조익도의 집에 있던 것을 또다시 펴내게 되었다. 이것은 책의 재간 과정과 판화의 예술수준을 알 수 있는 학술적인 자료이다.
 
3) ≪匡西實記≫
박진영의 실기이다. 2권 2책으로 목판본이다. 조선 말기에 7세손 박치복(朴致馥)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조성교의 서문과 권말에 박치복의 발문이 있다. 첫머리에 범례가 있고 권1에 연보·문집과 부록 上, 권2는 부록 下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창원대학교 경남학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