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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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기양서원(沂陽書院)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무기리 무기1동
   주세곤(周世鵾) 주선원(周善元) 주 각(周 玨) 주재성(周宰成) 주도복(周道復)
   1701년(숙종 27)
   
    3월 3일
   국담문집책판(菊潭文集冊板) -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42호(1985.01.14지정) 함안무기연당(咸安舞沂蓮塘) - 중요민속자료 제208호(1984.12.24지정)
기양서원은 1701년(숙종 27)에 주세곤(周世鵾), 주선원(周善元), 주각(周珏), 주재성(周宰成), 주도복(周道復) 등 다섯 사람을 추향하기 위하여 함안군 칠원면 무기리에 창건되었다. 고종 5년(1868) 훼철되었다가 연못 남쪽에 있는 충효사(忠孝祠)는 광복 후 1971년에 중건되었다.
본래의 자리는 서원 터만 남아있다. 현존 무기연당의 동북쪽 뒤편이다. 무기연당 내에는 연못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에 풍욕루(風浴樓), 창정각(彰幀閣), 충효사, 하환정(何煥亭)이 위치하고 있다.

기양서원은 1701년(숙종 27)에 주세곤(周世鵾), 주선원(周善元), 주각(周珏), 주재성(周宰成), 주도복(周道復) 등 다섯 사람을 추향하기 위하여 함안군 칠원면 무기리에 창건되었다. 고종 5년(1868) 훼철되었다가 연못 남쪽에 있는 충효사(忠孝祠)는 광복 후 1971년에 중건되었다.
본래의 자리는 서원 터만 남아있다. 현존 무기연당의 동북쪽 뒤편이다. 무기연당 내에는 연못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에 풍욕루(風浴樓), 창정각(彰幀閣), 충효사, 하환정(何煥亭)이 위치하고 있다.
 
배향인물
1)주벽-주세곤(周世鵾)
참판공 주문보(周文甫)의 장남이고 주세붕(周世鵬)의 백형이다. 학구에 전념하여 경사에 박통하고 정주의 학을 연수하여 덕기가 성취하여 문명을 크게 떨쳤다. 또한 무예를 닦아 종종 조에 무관으로 수의위교위(修義衛校尉)가 되었다.
그의 좌우명은 아버지의 훈계에 따라 신구(慎口), 신신(慎身), 신심(慎心)이었으며 이것을 스스로 돌이켜보면서 잘 지키기 위하여 성재(省齋)를 호로 삼았다. 중직대부 예빈시 부정(中直大夫 禮貧寺 副正)에 추증되었다.
 
2)주선원(周善元, 1580~1638)
주선원은 주세곤의 증손이며 주명창의 아들이다. 자는 지언(止彦)이고, 호는 우재(于齋)이다. 총명영민하여 장현광의 문하에서 위기지학을 전심하여 학식이 깊고 덕행이 독실하였다. 장현광이 ‘청음군자(淸陰君子)’라 칭송하였고 사우 간에도 도의지교가 깊었다. 가훈을 잘 준승(遵承)하였다. 통정대부 장례원 판결사(掌隷院 判決事)에 증직되었다.
 
3)주각(周珏)
주세곤의 5세손이며 주선원의 손이다. 어려서부터 효아(孝兒)라는 칭송을 받았으며 박문엽(朴文燁)의 문하에서 수업하며 성경현전(聖經賢傳)에 전심하여 신독공경(愼獨 恭敬)을 일상생활의 표본으로 하였다.
정묘(1687), 병자(1696)의 양대 흉년에는 가재를 기울여 구휼하였고 향교를 수리하고 향교재산을 늘려 학전을 마련하고 덕연서원을 중창하여 문풍을 쇄신하였다. 단기관혈(斷旨灌血)과 3년 여묘를 통해 부모에의 효를 솔선수범하였다. 현종의 승하시를 비롯하여 국상시에도 부모상과 같이 행함으로써 임금에 대한 충을 시범하기도 하였다.
호는 경재(敬齋)이다. 지극한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서 통선랑 사헌부 지평(通善郞 司憲府 持平)의 벼슬이 증직되었다.
 
4)주재성(周宰成, 1681~1743)
조선 후기의 학자·의병장.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성재(聖哉). 호는 국담(菊潭). 세붕(世鵬)의 후손으로, 각(珏)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근사록≫과 ≪주자대전≫을 탐독하고 <위학입교도 爲學立敎圖>와 <오륜론 五倫論>을 지어 실천에 힘썼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정희량(鄭希亮)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낙동강에 진출, 관찰사 황선(黃璿)으로부터 김해진군(金海鎭軍) 3,000명을 지원받아 영호(嶺湖)의 요새인 분치령(分峙嶺)을 방어하였다. 또한, 그 때 군량을 보급하기 위하여 가산을 팔아 쌀 300섬을 내어놓았다. 난이 평정된 뒤 고향에 돌아와 학문연구와 훈고(訓詁)에 전심하였으며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관찰사 황선과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조정에 그를 천거하였으나 등용되지 않았다.
죽은 지 3년 뒤인 1745년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에 추증되었으며, 1783년(정조 7) 영남유생의 상소로 정려(旌閭)되고 이어 1788년 기양서원(沂陽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중용≫과 ≪대학≫을 주석한 ≪용학강의 庸學講義≫, ≪논어≫·≪맹자≫·≪주역≫ 등을 추연한 ≪경의집록 經義輯錄≫,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예설을 집약한 ≪거가요범 居家要範≫ 등이 있다.
 
5)주도복(周道復, 1709~1784)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여강(汝剛), 호는 감은재(感恩齋). 칠원(漆原)의 무기리(舞沂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좌승지에 추증된 의사(義士) 재성(宰成)이며,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함안조씨(咸安趙氏) 석구(碩逑)의 딸이다.
1728년(영조 4) 아버지가 의병을 일으켜 이인좌(李麟佐)의 난적을 토벌할 때에 아버지를 따라 출진(出陣)하였고, 어머니 병환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여 연명(延命)시켰다. 조상의 업적을 기리니 영조로부터 그의 조부와 아버지에게 증직을 받게하였다.
1859년(철종 10) 이휘준(李彙濬)·권재형(權載衡) 등의 유소(儒疏)로 조봉대부(朝奉大夫)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추증되었고, 기양서원(沂陽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감은재일고 感恩齋逸稿≫ 1책이 있다.

기양서원의 본래 자리는 현재 서원 터만 남아있다. 현존 무기연당의 동북쪽 뒤편이다. 무기연당 내에는 “기양서원중수기념비‘가 있다.

1)국담문집책판(菊潭文集冊板)-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42호(1985.01.14지정)
신재 주세붕의 방손(직계에서 갈라져 나온 계통의 자손)인 주재성(周宰成)의 글을 모아 1908년 그 후손이 간행한 책인
참고-창원대학교 경남학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