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릉서원은 본시 송로정이었는데 문후선생이 학당으로 사용하면서 1602년에 중수하여 연강정이란 현판을 걸었다. 연강(練江)이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마음을 단련한다는 뜻으로서 학업에 방해가 되는 이단(異端)을 억제하는 정신단련의 신조로 삼아 왔든 것이다.
또한 연강정의 벽에는 경이직내 의이방외(敬以直內 義以方外(경으로서 마음을 바르게 하고 의로서 밖을 바르게 한다))를 써 붙이고 몸가짐을 삼갔으며 저서로 경의잠(敬義箴), 역학회통(易學會通)5편, 사례촬고(四禮撮考)4권 등을 집필하셨다.
또한 선생은 1608(선조41년) 당시 조정에서는 파벌세력에 대북 소북간의 대립으로 희생되었던 오현의 문묘종향을 청원하는 상소문을 73인의 경상도 지역 유림단체에 결속되어 천리 한양 길을 달려가 항소극론하므로서 선조의 명쾌한 화답을 받아내게 되었으며 왕이 그 의기를 찬탄하여 벼슬의 기회를 주었으나 사양하고 유유자적하게 학문에만 심취하였다.
선생의 높은 덕을 기리어 제자 유생들이 매년 음력 4월20일 선생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뜻으로 4세기 동안 향례행사를 치러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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