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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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구암서원(龜岩書院)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황거중(黃居中) 황응청(黃應淸) 정홍면(鄭弘溟) 황극호(黃克孝) 정복환(鄭福煥)
   1827년(순조 27)
   
   2월 중정(中丁)일
   
구암서원은 1827년(순조 27)에 창건했다가 1868년(고종 5)에 철폐된 것을 1902년(광무 6) 지금의 자리에 단을 설치하였으며, 1967년 단이 있던 자리에 사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는 황거중(黃居中)을 중심으로 황응청(黃應淸), 정홍면(鄭弘溟),황극호(黃克孝), 정복환(鄭福煥) 등이 모셔져 있다.

1)주벽-황거중(黃居中, 생몰년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우주(紆州). 자는 경덕(敬德), 호는 사가(四佳). 아버지는 고려의 문하평리를 지낸 문용(文用)이며, 어머니는 덕수장씨(德水張氏)이다. 어려서부터 글 짓는 데 능하고, 경서를 해석함에 남달리 뛰어났다고 한다.
이성계(李成桂)의 황산전투(荒山戰鬪)에 종사관으로 참여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이성계가 왕위에 올랐을 때 정당문학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부양하는 것을 제일 우선적인 것으로 삼아 주·군에 교수·훈도를 둘 것을 건의하여 허락을 받았다. 뒤에 공조전서에 임명되었다가 곧 호조판서에 올랐고, 이듬해에 향리에 돌아갔다. 조선 초기의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일으킨 공이 크다. 1395년(태조 4) 원종공신의 칭호를 받았다. 저서로는 ≪사가유고≫가 있으며, 죽은 지 400여년 뒤인1842년(헌종 8)에 김제의 구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2)황응청(黃應淸)
조선 전기의 유학자, 호는 행은(杏隱), 거중(居中)의 6세손 길문(吉文)의 아들이다. 김제출생이며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동이라 하였다. 15세에 모친상을 당하여 의례절차를 극진히 하였다. 19세에 학업이 대진(大進)하여 호남일대에 그 명성이 알려져 배우고자 찾아오는 이가 많았다.
 
3)정홍명(鄭弘溟, 1582~1650)
조선 전기의 학자이다. 자는 자용(子容), 호는 기암(畸庵) 시호는 문정(文貞), 본관은 연일, 송강 정철의 아들이다. 김장생의 고제(高弟)이다. 1616(광해군 8)에 문과에 급제, 예문관 검열을 거쳐 대사헌·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후에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문학과 덕의가 높았다.
 
4)황극효(黃克孝)
조선 후기의 학자이다. 호는 동계(桐溪), 본관은 우주(紆州), 거중의 9세손이며 김장생의 문인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공주로 나갔으나 화친이 이루어졌다는 말을 듣고 통곡을 하였다. 이 후 북을 향해 앉지도 않고 ‘淸’자를 쓰지 않았다 한다.
 
5)정복환(鄭福煥)
호는 겸암(謙庵), 본관은 연일, 송강 정철의 손자이다. 남녘의 군수가 되어 사풍을 진작시켰다.

사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맞배지붕이며, 강당은 앞면 4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참고-김제문화원, 김제의 숨결-김제군편, 199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국향교원우대전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