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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벽-최서림(崔瑞琳, 1632∼1698)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 여발(汝發), 호(號) 관곡(寬谷), 김신독재(金愼獨齎)의 문인(門人)으로 1662년(顯宗 3年)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으나 과거(科擧)에 뜻을 두지 않고 숙종 20년(肅宗 20年:1694年)에 공능참봉(恭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후진 교육에 힘썼다. 2)은정화(殷鼎和, 1650∼1724) 본관은 행주(幸州), 자 매경(梅卿), 호 백계(柏溪), 최관곡(崔寬谷)의 문인으로 시문(詩文)에 능하며 부모에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의 병환에 상분(嘗糞:환자의 대변을 맞보아 증세를 살피는 것)하고 손가락을 쪼개어 피를 먹여 수개월을 연명했다 하며 모상(母喪)에3년 시묘를 하였다. 3)한백유(韓伯愈, 1675∼1742) 본관은 청주(淸州), 자 퇴여(退汝), 호 오천(鰲川), 최관곡의 문인으로 학문에 전심하여 순천부 훈도(順天府 訓導)로 흥학비(興學碑)가 있다. 천도인통(天道人通)을 펴냈으며 하도낙서(河圖洛書) 3백수(數)를 풀었으니 많은 선비들이 문하에 있었다. 4)김정호(金挺昊, 1673∼1742) 본관은 도강(道康), 자 명세(命世), 호 동곡(東谷) 최관곡의 문인으로 학문(學問)에 정진(精進)하였으며 친환(親患)에 산제(山祭)와 기도를 올려 설중(雪中)에 산삼을 얻어 효험을 보았다. 5)유종흥(柳宗興) 본관은 고흥(高興), 자 진보(振甫), 호 월곡(月谷), 최관곡의 문인으로 후진교육에 힘썼으며 승지(承旨) 벼슬로 불렸으나 나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