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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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대로서원 - 대로사[大老祠, 강한사(江漢祠)
   http://www.nrich.go.kr/kr/mmulti/mList.jsp?ca_id=4 [568]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하리 201-1
   
   1785년(정조9년)
   1785년 사액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0호
조선 중기의 문신인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정조 9년(1785)에 건립되었다. 정조는 세종의 영릉(英陵)과 효종의 녕릉(寧陵)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김양행(金亮行) 등에게 명하여 사당을 건립하도록 하고, 대로사(大老詞)라는 이름을 내려 주었으나 고종 10년(1873) 10월에 지금의 강한사(江漢祠)로 이름을 바꾸었다.
강한사는 서쪽에 위치한 효종의 녕릉을 향해 서있어 송시열과 효종의 밀접한 관련을 짐작케 해주고 있다.

송시열은 인조 11년(1633) 생원시에 급제하여 경릉참봉을 시작으로, 나중에 효종이 된 봉림대군의 사부가 되었고, 좌의정, 영중추부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효종이 즉위하자 청나라에 당한 병자호란의 복수를 위한 북벌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효종의 총애를 받았다.
효종이 죽은 후에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 조씨의 복제문제로 이른바 예송 논쟁을 일으키며, 노론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인물이다.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 청주의 화양동에서 은거하던 중 숙종 15년(1689) 나중에 경종이 된 왕세자의 책봉문제로 상소하였다가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국문을 받기위하여 서울로 올라오던 중 전북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송시열은 율곡 이이의 학통을 이어받은 기호학파의 주류였으며, 특히 예론에 밝았다고 한다.
시호는 문정공이며, 문묘와 효종의 묘에 제향되었다. 강한사는 배치나 품격이 뛰어난 건물이다.
1873년 성균관 유생 이세우 등이 대원군에게 대로(大老 : 덕이 높고 학식이 풍부하여 존경할 만한 노인)의 존호를 올릴 것을 상소하여 임금의 허락을 받는다. 조선에는 대로가 둘이 있었는데 우암 송시열과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었다. 하늘 아래 2개의 태양이 없는 법이라 그랬는지 흥선대원군이 대로라 불리게 되자 우암의 사당인 대로사가 강한사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이 때 박규수(朴珪壽, 연암 박지원의 손자, 대동강에서 미군함 제너럴셔먼호를 격퇴한 인물)가 왕의 명을 받아 현판을 쓰게 되었다.


건물구조는 강당과 사묘, 관리인이 거주하는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어 비교적 간단한 규모이다. 출입문인 장인문이 서쪽으로 나있으며, 사묘 또한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사우로부터 서쪽 방향에 있는 효종의 영릉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과 사우에 대한 훼철를 단행할 때 전국에 송시열을 제향하던 서원 및 사우가 44개소나 되던 것이 모두 헐렸으나 오직 이 대로사만은 ‘강한사’로 이름을 바꾸어 남게 되었다.
서적이나 기타 목판 등이 산실되고, 겨우 외모만 갖추고 있을 뿐이다. 정조 때 사액시 대제학인 김종수(金鍾秀)가 쓴 ‘大老祠’의 현판이 현재 사묘 안에 보관되어 있다.
대로사 비(大老祠 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4호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하리 199-1
조선시대 대유학자로 북벌정책을 주장한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을 제향하는 대로사의 내력을 적은 비로, ‘대로’는 송시열에 대한 존칭이다. 대로사는 정조 3년(1779) 왕이 효종의 능인 녕릉을 참배하고 여주 관아에 머물렀을 때 옛날 송시열이 능을 향해 통곡하며 후진에게 북벌의 대의를 주장했다는 말을 듣고 수행한 김양행에게 사당 건립을 추진하게 하여 정조 9년에 건립한 사당이다.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월철폐령에도 없어지지 않고 강한사로 개칭되어 남았다.
송시열은 효종과 함께 청나라를 정벌하자는 북벌계획을 추진하였으나 효종이 사망하자 북벌계획은 중지되었고, 이후 서인의 지도자로서 활약했다. 일생을 주자학 연구에 몰두한 유학자로서 이이의 학통을 계승하였고, 예법에 관해서도 능통하였다. 효종 묘에 배향하고 청주의 화양서원, 공주의 충현서원 등 전국 30여개의 서원에 제향되었다.
대로사 비의 모양을 보면 네모난 대석 위에 비몸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 모양의 개석을 얹었다. 앞면에는 ‘대로사비’라는 전서 제목이 있고, 나머지 면에는 정조가 짓고 쓴 비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