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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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백산서원(白山書院)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사천리
   서재승
   1951년
   
   음력 2월과 8월 하정일(下丁日)
   
백산서원은 새내마을 안쪽에 있는 서원으로, 일제에 항거하여 분기한 충의공(忠義公) 죽림(竹林) 서재승(徐在承)의 붉은 충절을 추모하여서 건립한 서원이다.백산서원은 지방유림과 달성서씨 문중의 발의로 1951년에 사림이 건의 하여서 창의사(彰義祠)로 건립되었으며, 1971년에 백산서원으로 승격하고 1980년에 사림도회(士林都會)에서 충의(忠義)의 사시(私諡)를 받았다.
봉안문(奉安文) 상향문(常享文)은 김황(金榥)이 지었다.

1)서재승
이 서원에는 을사조약(1905)이 체결되자 의병활동에 투신하여 순절한 충의공(忠義公) 서재승(徐在承, 1876~1915)의 위폐를 봉안하고 있으며,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성서(聖瑞), 호는 죽림(竹林)으로 경상북도 일원에서 활약한 항일 의병장이다.
1876년(고종 13) 11월 25일 경상북도 영주(榮州)에서 태어났다. 탁지부(度支部) 주사(主事)로 재임하던 1905년 11월에 일제가 강제로 을사조약(乙巳條約)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이에 격분해 관직을 사임하였다.
이후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의병 투쟁에 몸담아 군량 수합에 힘쓰는 한편, 1909년에는 스스로 의병을 일으켜 여러 해 동안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그러다 전세가 불리해져 영주군(지금의 영주시)으로 피신해 있던 중 1915년 친일 앞잡이의 밀고로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었다. 이어 서울로 압송 도중 모진 고문을 받다가 같은 해 7월 22일 지금의 풍기(豊基)에서 총살당하였다.

경내의 감모문(感慕門)을 들어가면 명사루, 창의정, 동재, 월영당, 학구재, 서장각, 서재 중앙에는 강당이 있고, 동쪽 옆으로 송평정, 대암정사, 전사청, 제기고, 및 정전재와 주사 충의고택(忠義古宅:12동 99간) 등이 즐비하고 총 건평이 378평이며 원재는 논, 밭, 임야 등의 총면적이 8만 5천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