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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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오계서원(迃溪書院)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55-1
   이덕홍(李德弘) 이 시(李 蒔)
   1570년(선조 3)
   3월 중정(中丁)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475호(2005.01.10지정)
오계서원은 1570년(선조 3)에 이덕홍(李德弘)이 학문연마와 심신수련을 위해 건립한 「오계정사」의 후신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소실(燒失)되었으나, 1595년(선조 28)에 쌍계(雙溪) 언덕으로 이건(移建)하였고, 1636년(인조 14)에 홍수로 유실되는 등, 여러차례 이건과 중건을 거쳤다. 사림의 공론으로 1665년(현종 6) 10월 2일에 도존사(道存祠)를 建立하고 이덕홍(李德弘)의 위패를 봉안한 후 1691년(숙종 17) 오계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699년과 1707년의 대홍수로 물길이 바뀌어 서원이 침수 피해가 있자 1711년(숙종 37)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724년(경종 4)에 그의 장자 이시(李蒔)를 배향하였다.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가 1919년에 복향하였고 1978년에 道存祠를 재건하였다.

1)이덕홍(李德弘, 1541~1596)
조선 중기의 학자. 예안 출생.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굉중(宏仲), 호는 간재(艮齋). 할아버지는 습독(習讀) 현우(賢佑)이고, 아버지는 증참판 충량(忠樑)이며, 어머니는 나주박씨로 부사직 승장(承張)의 딸이다. 형조참판 현보(賢輔)의 종손자이다.
10여 세에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어가 오로지 학문에 열중하여 스승으로부터 자식처럼 사랑을 받았다. 모든 학문에 뛰어났으나 특히 역학에 밝았다. 1578년(선조 11) 조정에서 이름난 선비 아홉 사람을 천거할 때 제4위로 뽑혀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이 되고, 이어 종묘서직장(宗廟署直長)·세자익위사부수(世子翊衛司副率)를 역임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를 따라 성천까지 호종하였다.
이 때 상소문에 귀선도(龜船圖)를 첨가하여 바다에는 거북선과 육지에는 거북거〔龜車〕를 사용할 것을 진언하였다. 다음해 봄에 영춘현감으로 나아가 난리 중에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논어≫·≪중용 中庸≫·≪심경 心經≫·≪고문전후집 古文前後集≫·≪가례 家禮≫ 등을 주석하였으며, 후에 호종의 공으로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영주의 오계서원(迂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주역질의 周易質疑≫·≪사서질의 四書質疑≫·≪계산기선록 溪山記善錄≫·≪주자서절요강록 朱子書節要講錄≫·≪간재집≫ 등이 있다.
 
2)이시(李蒔, 1569~1636)
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중립(中立), 호는 선오당(善汚堂). 본관은 영천(永川). 안동 출신.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이덕홍(李德弘)이며,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서 13, 14세에 경사(經史)를 통달하였다.
이 때 아버지의 도(道)를 굽혀서까지 명예를 따르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받들어, 벼슬할 것을 단념하고 학업에만 전념하였다. 그의 글 중, 사람이 순풍에 돛을 단다면 험한 길도 쉽게 갈 수 있지만, 출발을 잘못하여 폭풍우를 만나면 배는 뒤집히고 사공은 익사한다는 국문시조 <조주후풍가 操舟候風歌>가 유명하다.
만년에 오천(迂川)의 하류에 오계서당(迂溪書堂)을 짓고 후진양성에 힘써 많은 학자들을 길러내었다. 그의 학행을 흠모하여 많은 선비들이 모여들었는데, 그것을 기록한 ≪오계서당동화록 迂溪書堂同話錄≫이 있다. 친상 중 집상하느라고 병을 얻어 죽었다.
저서로는 ≪선오당일고≫ 2권이 있다. 뒤에 사복시부정(司僕寺副正)에 추증되고, 오계서원에 제향되었다.

현존하는 경내의 건물로는 도존사(道尊祠)·강당·관성재(觀省齋)·험위료(驗爲寮)·내삼문·입도문(入道門)·군자정(君子亭)·전사청·주소(廚所) 등이 있다.
서원의 배치는 전면에 강학(講學) 공간인 강당(講堂)이 있고, 후면에 제향(祭享) 공간인 사우(祠宇)가 배치되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로 되어 있다. 도존사는 향사(享祀)를 지내는 사우(祠宇)로 정면 3칸·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강당은 원내의 모든 행사와 유림 회합 및 학문 토론 장소로 정면 4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중앙 2칸은 우물마루로 되어 있고, 좌우측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동재인 관성재와 서재인 험위료는 유생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곳으로 각각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군자정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입도문과 내삼문은 향사(享祀) 때 제관(祭官)의 출입문으로 사용되고 있고, 전사청은 제수(祭需)를 장만하여 보관하는 건물이다.

오계서원에는 책판 300장과 각종 현판이 소장되어 있다고 전해지는데, 상당수 분실한 후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위탁 관리 중이다.
 
참고-한국국학진흥원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