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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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역동서원(易東書院)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371
   우 탁(禹 倬)
   1567년(선조즉위년)
   1684년(숙종 10)
   2월, 8월 하정(下丁)
   경상북도기념물 제 146호(2003.09.22)
역동서원은 안동에서 가장 오래된 서원이며, 1570년(선조 3)에 이황(李滉)의 발의로 우탁(禹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했다. 대개 서원의 명칭은 서원 건립 지역의 명칭이나 혹은 봉향되는 그 명현의 호를 사용하는 것이 통례인데 본 서원의 경우에는 지명이나 호와 관계없이 “역동”이라 붙여지고 있다. 이는 퇴계 선생께서 우탁이 역을 해득하여 이 땅에서 강학하여 교수한데서 명명하였다고 한다. 1684년(숙종 10)에 역동(易東)이라 사액되어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오던 중,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9년 11월 현 위치에 이건 복원했다. 숙종이 사액한 현판은 유실되었으나 아직까지 퇴계 선생이 손수 써서 게판했던 ‘역동서원’, ‘광명실’ 등 현판들이 남아 서원을 더욱 정채있게 해준다. 또한 최근 역동서원이 자리잡았던 지역에 안동대학교가 옮겨오면서 그 관리를 맡아 향사 의식 등 제반 서원 운영과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원의 옛터인 지삼의는 안동댐의 건설로 수몰되었으며, 그 옛날 존현양사의 전당이 창건되었던 역동 그 자리에는 유허비만이 이건되어 남아 있다.

1)우탁(禹倬, 1263~1342)
고려 말 정주학 수용 초기의 유학자.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천장(天章) 또는 탁보(卓甫·卓夫), 호는 백운(白雲)·단암(丹巖). 세상에서 ‘역동선생(易東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시조 현(玄)의 7대손으로, 남성전서문하시중(南省典書門下侍中)으로 증직된 천규(天珪)의 아들이다.
1278년(충렬왕 4) 향공진사(鄕貢進士)가 되고, 과거에 올라 영해사록(寧海司錄)이 되었다. 이 무렵 영해에는 팔령(八鈴)이라 이름하는 신사(神祠)가 있었다. 백성들이 그 영험을 믿고 팔령신(八鈴神)을 극진히 받들고 있었으며, 자주 제사지내고 재물을 바쳐 폐해가 막심했는데, 팔령신을 요괴로 단정하고는 신사를 과감히 철폐하였다.
1308년(충선왕 즉위년) 감찰규정(監察糾正)이 되었고, 충선왕이 부왕의 후궁인 숙창원비(淑昌院妃)와 통간하자 백의(白衣)차림에 도끼를 들고 거적자리를 짊어진 채 대궐로 들어가 극간을 하였다.
곧 향리로 물러나 학문에 정진했으나 충의를 가상히 여긴 충숙왕의 여러 번에 걸친 소명으로 다시 벼슬길에 나서서 성균좨주(成均祭酒)로 치사하였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예안(禮安)에 은거하면서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당시 원나라를 통해 새로운 유학인 정주학 (程朱學)이 수용되고 있었는데, 이를 깊이 연구해 후학들에게 전해주었다.
정이(程頤)가 주석한 ≪역경≫의 <정전 程傳>은 처음 들어왔을 때 아는 이가 없었는데, 방문을 닫아걸고 연구하기를 달포만에 터득해 학생들에게 가르쳐주었다.
경사(經史)에 통달했고, ≪고려사≫ 열전에 역학(易學)에 더욱 조예가 깊어 복서(卜筮)가 맞지 않음이 없다고 기록될 만큼 아주 뛰어난 역학자였다. 또한 시조 2수와 몇 편의 시가 전하고 있다.
조선조에 와서 이황(李滉)의 발의로 1570년(선조 3) 예안에 역동서원(易東書院)이 창건되었으나, 1871년(고종 8)에 훼철당했다가 1966년 복원되었다. 또 다른 서원인 구계서원(龜溪書院)은 영남대학교 구내로 옮겨졌다.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안동대학교 내 평평한 대지에 앉혀진 서원의 경내에는 강당, 사당, 동서재, 고직이 배치되어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좌우에 대칭으로 동서재가 자리하고 정면으로는 강당이 있다. 강당영역의 뒤편에는 사당영역이, 좌측에는 고직사 영역이 배치되어 있다.
 
1)사우
사우인 상현사(尙賢祠)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 집이며, 지붕은 와가로써 맞배지붕에 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묘우 앞에는 신문이 설치되어 있고 묘우 내부에는 마루가 설치되어 있으며 제사, 교의, 향상이 놓여있다.
 
2)강당
서원의 강당으로 쓰이는 명교당(明敎堂)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동서 양쪽에는 1칸의 협실을 내고 중앙 3칸은 대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 역동서원이란 현판이 걸려있고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3)동·서재
동,서재는 원생들이 기숙하면서 강학하던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의 형태는 맞배지붕이다. 동재는 사물재(四勿齋), 서재는 삼성재(三省齋)로 명명하고 있다.
 
4)기타
전사청은 제수를 장만하여 보관하는 곳으로 1칸 건물이며, 주소는 서원을 수호하는 고지기가 거처하는 곳이다. ‘입도문(入道門)’의 현판이 달린 외삼문은 솟을대문 형식으로 3칸 규모이다. 중앙에 문을 두고 좌우에 방과 광을 연결하였으며, 상부에 화려한 화반장식을 한 것이 특징이다. 내삼문은 3칸 규모로 평대문형식에서 중앙의 신도문만 기와를 조금 높이 얹었다.


참고-한국국학진흥원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