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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9대서원 - 필암서원


 
작성일 : 12-09-1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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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536  



장성 선비들의 의리와 절개


1256년 고려 고종 43년 입암산성에서 몽고군 격퇴
1590년 선조 23년 팔암서원 기산리에 건립
1592년 선조 25년 남문창의
1894년 동학군이 황룡싸움에서 관군 대파
1919년 북이 모현리 만세시위

연산군의 횡포가 극에 달하자 반정군을 일으키자고 격문을 돌린 옥과군수인 영광인 김개(金漑)나 의리사상을 깊게 간직한 호남사림의 큰 맥을 이루게 했던 신평인 송흠(宋欽)이나 울산인 김인후(金麟厚), 청백리로 명성을 떨친 태인인 박수량(朴守良)은 모두 우리고장이 낳은 인재들이다.

충절과 의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성인 등 호남인은 나라와 민족이 어려움에 처할 때 분연히 떨쳐 일어나 구국의 대열에 앞장섰으니, 임진왜란에서 이 나라를 건지고 한말의 일제침략에서도 의병활동의 중심이 되어 최후까지 싸웠다.

왜란으로 전국토가 짓밟히고 백성들이 유린당할 때 의병에 앞장선 장성인들이 많았는데 김경수(金景壽)의 남문창의를 비롯하여 기효간(奇孝諫), 기효근(奇孝謹)의 의병활동, 화차를 발명하여 행주싸움을 승리로 이끈 변이중(邊以中), 동래산성에서 적을 맞아 순국한 양산군수 조영규(趙英圭) 등이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데 크게 공헌했고, 입암산성에서 순절한 윤진(尹軫)의 충절은 장성인의 정신을 웅변해 주었다.

이러한 의병정신은 한말에도 계속되었으니 전기 호남의병을 주도한 장성의병은 기우만(奇宇萬)·기삼연(奇參衍) 등이 주도하였으며, 후기 호남의병의 중심이요 전국의병의 꽃은 기삼연이 삼계 수연산에서 출발한 호남창의회맹소였다. 일제 침략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기삼연의병대는 그가 순국한 이후에도 그의 막료들에게 계속되었으니 김용구(金容求)·김준(金準)·전해산(全海山) 의병들이 모두 기삼연의 후계자들이었다.

또한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장성인의 기질은 위정척사운동(衛正斥邪運動)의 선구가 되게 하였으니, 기정진(奇正鎭)은 가장 먼저 상소를 올려 그 뒤를 이은 이항로와 함께 쌍벽을 이루어 우리 것을 지켜 사악한 외래사상을 배격하자고 주장해 한말의병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게 했다. 충절과 의리를 지키려는 장성인의 활동은 을사조약에 협조한 5적암살 활동에도 표출되었으니 기산도(奇山度)의 이근택 저격사건이 바로 그것이었다.

한편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장성인들은 잘못된 비리를 바로잡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변화와 개혁에도 앞장섰으니, 1862년의 임술농민항쟁에서도 장성의 농민대중이 궐기했을 뿐만 아니라 기정진 등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혁신을 통해서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출하자는 상소문을 입안하기도 했다. 1894년에 반외세의 자주독립과 반봉건의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호남인이 주도한 동학농민혁명에서도 장성인들은 적극 참여했으니, 농민군의 최대 승전지가 황룡전투였음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일제 36년간의 가혹한 탄압과 수탈의 식민통치기간에 날카롭게 저항하면서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는데도 장성인들의 활약이 대단했으니, 3·1만세운동에도 적극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신간회활동 그리고 광주학생독립운동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였다.

1919년 3월 1일 정오부터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소리는 전국의 방방곡곡을 요동쳤다. 우리고장 장성에서는 군내 전지역에서 산상봉화시위와 삼서 소룡리의 만세시위, 장성읍의 만세시위 그리고 북이면 모현리의 만세시위가 두드러졌는데 특히 모현리 만세시위는 그 규모나 열의가 전국에서도 손꼽을 정도였다.

1927년에 모든 민족운동단체들이 결집하여 조직한 민족단일당인 신간회 활동에서도 장성인들은 지회를 설립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전국대표로 활약한 인사도 있었다. 1929년 11월의 광주학생독립운동에서도 장성출신의 학생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했으며 중책을 맡기도 했는데 사회인사로 학생운동의 배후에서 큰 활약은 물론 전국확산에 공헌한 사람도 있으며, 1943년에 전개된 제2학생독립운동은 장성인들이 주도하였다. 그리고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전남대의원으로 활동하였거나 해외에서 장성인의 의기를 발휘한 독립투사들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