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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1-10 14:12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서원의 재발견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0,337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서원의 재발견

[중앙일보] 입력 2013.11.09 00:30 / 수정 2013.11.09 00:30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
# 전남 장성역에 내리면 역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라 써서 돌에 새겨 놓은 것이 눈에 띈다. 흥선대원군의 말로 “학문으로는 장성만 한 곳이 없다”는 의미가 담겼다. 그도 그럴 것이 장성에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를 기리는 필암서원(筆巖書院)이 있다. 하서가 누구던가. 호남에서는 유일하게 문묘종사(文廟從祀) 되었고, 정조 임금이 말하길 “도학과 절의, 문장을 모두 갖춘 이는 오직 하서뿐”이라며 칭송한 이가 아니던가. 하지만 필암서원뿐인가. 인근에 있는 너브실(광곡[廣谷], 행정구역상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속하나 생활권은 장성군)의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을 기리는 월봉서원(月峯書院)도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고봉이 누구던가. 32세의 나이에 58세의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더불어 8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 유명한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辨)’을 펼쳤던 이가 아닌가. 특히 그와 퇴계의 논변은 세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소통하며 한 차원 높은 융화를 추구한 선조들의 고결한 진면목을 보는 듯해 후손 된 우리의 좁다람과 편협함을 근원에서부터 돌아보게 한다.

 #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던 지난 수요일 늦은 오후에 고봉의 묘소를 찾았다. ‘하루가 아깝다’는 뜻이 담긴 애일당(愛日堂)이 자리 잡고 있는 기씨댁 고택과 월봉서원 사이에 난 대숲길을 지나 흰소라는 뜻의 백우산(白牛山) 기슭으로 10여 분 올라가니 고봉과 그의 부인 함풍 이씨가 좌우로 나란히 함께 묻힌 묘소가 길손을 반겼다. 묘택 앞을 흐르는 황룡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스치자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며 옷깃을 여미고 쓰고 있던 모자를 벗은 뒤 예를 갖췄다. 비록 오십도 안 된 46세의 아까운 나이에 갑작스레 세상을 뜬 고봉이지만 그의 고매한 인품과 사상의 냉철함은 450여 년 세월의 격차를 넘어 지금 우리에게도 전해지지 않는가. 혼탁한 세상일수록 높고 고결한 학문이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 지난 주말에 펼쳐졌던 고봉문화제가 끝난 직후인지라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는 월봉서원의 빙월당(氷月堂)에 앉아 우중(雨中)에 어둠이 내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고봉이 지은 시 한 수가 떠올랐다. “교만함과 옹졸함이 쓸모없음을 알아/ 뒤늦게 붓들고 시를 배웠네/ 깊이 생각해서 뜻담아 엮었지만/ 읊어보니 글자에 기이함만 구한 셈이네/ 영웅도 이제 몇 안남았는데/ 강호에서 만나자더니 어찌 늦을꼬/ 자리 베풀어 흥취 더했으니/ 서로 보며 빙그레 웃지요.”(‘고봉시선’ 중에서) 그렇다. 세상만사 복잡다단하나 서로 보며 빙그레 웃으면 또 한 세상 열리는 법! 정조 임금이 고봉의 고결한 학문을 가리켜 ‘빙심설월(氷心雪月)’과 같다고 한 소이를 알 듯싶었다. 아마도 그것은 효종 임금이 고봉을 기린 제문에서도 썼듯이 “잘 단련된 금과 같고 윤택한 옥과 같으며 맑은 수월(水月)과 같고 결백한 빙호(氷壺)와 같은 것”이리라.

 # 본래 서원(書院)은 존경해 지표로 삼는 스승과 선현의 연고지에 후학들이 제향(祭享)과 더불어 교육을 위해 설립한 것이다. 비록 조선조 말에 난립한 서원들로 사회경제적인 물의를 빚자 대원군이 서원 철폐라는 강수를 둔 바도 있지만 이제는 도리어 ‘서원의 르네상스’가 필요한 때다. 인문정신의 부흥은 서원의 부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본래 살아 있는 인문의 요충으로서 서원을 복원하고 새롭게 부흥시켜 21세기 인문과 문화, 예술 소양의 중심축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진작시켜야 한다. 아울러 450여 년 전 논변을 펼쳤던 퇴계와 고봉의 뜻을 이어 퇴계의 도산서원과 고봉의 월봉서원이 한 차원 높게 교류하고 타 지역의 서원들도 서로의 인문적 네트워크를 활성화할 때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새로운 소통과 화합의 모델을 만드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21세기 한국의 문화 융성과 도의 진작을 위한 첩경이 아니겠는가.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