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10-25 10:40
서원 바로 알기(19) - 史蹟으로 지정된 서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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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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紹修書院, 屛山書院, 陶山書院
▶소수서원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의 유현(儒賢) 안향(安珦)의 사묘(祠廟)를 세우고 1543년(중종 38)에 학사(學舍)를 이건(移建)하여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한 것이 이 서원의 시초이다. 그 후 1544년 여기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1633년(인조 11)에는 주세붕을 추배(追配)하였다. 1550년(명종 5) 이황(李滉)이 풍기군수로 부임해 와서 조정에 상주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사액(賜額)과 <사서오경(四書五經)> <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의 내사(內賜)를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학(私學)이 되었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서원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서원의 건물로는 명종의 친필로 된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편액(扁額)이 걸린 강당, 그 뒤에는 직방재(直方齋)와 일신재(日新齋), 동북쪽에는 학구재(學求齋), 동쪽에는 지락재(至樂齋)가 있다. 또한 서쪽에는 서고(書庫)와 고려 말에 그려진 안향의 영정(影幀: 국보 111)과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坐圖: 보물 485)가 안치된 문성공묘(文成公廟)가 있다. ▶도산서원 사적 제170호로 1969년 지정됐다. 동서재(東西齋)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집. 전교당(典敎堂: 보물 210)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굴도리집. 상덕사(尙德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기와집. 원래는 이황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가르치며 학덕을 쌓던 곳으로, 1575년(선조 8) 한호(韓濩)의 글씨로 된 사액(賜額)을 받음으로써 영남(嶺南) 유학의 연총(淵叢)이 되었다. 이 서원의 건축은 모두 무사석계층(武砂石階層)이며 방주(方柱)의 사용이나 초공(草工)을 끼운 대들보의 간략한 가구(架構) 등 전체적으로 간소하다. 서원 안에는 약 400종에 달하는 4,000권이 넘는 장서와 장판(藏板) 및 이황의 유품이 남아 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 때에는 소수서원(紹修書院)·숭양서원(崧陽書院) 등과 더불어 정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1969년 문화체육부에서 해체 복원하여 면목이 일신되었다. ▶병산서원 1978년 3월31일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었다. 경상북 안동시 풍천면(豊川面) 병산동(屛山洞)에 있다. 전신은 고려 말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풍산유씨의 사학(私學)이었는데, 1572년(선조 5)에 유성룡이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1613년(광해군 5) 정경세(鄭經世)가 중심이 되어 지방 유림이 유성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1863년(철종 14)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사원으로 승격되었다.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훼철되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의 하나이다. 제향공간으로 존덕사(尊德祠)·신문(神門)·전사청(典祀廳)이 있고, 강학공간으로 입교당(立敎堂)·동재(東齋)·서재(西齋)가 있으며, 부속 건물로 장판각(藏板閣)·만대루(晩對樓)·복례문(復禮門)·주사(廚舍) 등이 있다. 유성룡의 문집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 1,000여 종 3,000여 책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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