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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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작성일 : 12-10-25 10:39
서원바로알기(18) - 남명 조식을 모신 서원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1,140  


합천의 德川書院과 龍巖書院

18현으로 문묘에 배향되지는 못했지만 우리 유학사에서 남명 조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퇴계와 율곡에 비해 결코 쳐지지 않는다. 그는 철저한 절제로 일관하여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으며, 당시의 사회현실과 정치적 모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비판의 자세를 견지하였다. 단계적이고 실천적인 학문방법을 주장하였으며 제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경상우도의 특징적인 학풍을 이루었다
그를 모신 대표적 서원은 경상남도 합천의 덕천서원이다. 덕천서원은 1576년(선조 9)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최영경, 하항 등 사림(士林)들이 그가 강학하던 자리에 건립되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02년(선조 35)에 중건되었다. 1609년(광해군 1) 현판과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아 덕천(德川)이라는 이름으로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덕천서원은 강우유맥 남명학파의 본산이 되었으며 인조반정 등으로 정치적 풍파를 겪었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30년대에 다시 복원되었다. 유적지 경내에는 덕천서원과 함께 산천재(山天齋)·세심정(洗心亭)·조식묘 등이 있다.
덕산 입구의 입덕문(入德門)을 지나면 수령이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서 있는 덕천서원에 이른다. 입구의 홍살문을 지나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맞배지붕을 올린 솟을삼문인 시정문(時靜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강당인 경의당(敬義堂)이 있고 그 앞쪽으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이 공부하며 거처하던 곳이고 경의당은 서원의 각종 행사와 유생들의 회합 및 토론장소로 사용되던 곳으로 ‘德川書院’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서원의 중심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중앙에 대청이 있고 그 양쪽으로 툇마루와 난간이 달려있는 2개의 작은 방이 있다. 경의당 뒤쪽의 신문(神門)을 지나면 사당인 숭덕사(崇德祠)가 나오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맞배지붕 집으로 중앙에는 조식의 위패, 오른쪽에는 그의 제자인 최영경(崔永慶)의 위패를 모셔 놓았다. 덕천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3월과 9월의 첫 정일(丁日)에 제사를 지내고 매년 양력 8월18일에는 남명선생의 탄생을 기념하는 남명제가 열린다. 1974년 2월1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되었다.  
남명을 모신 다른 서원은 용암서원이다.  1812년(순조 12)에 세웠다. 합천군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용암서원이 고종의 서원철폐령 이후 훼철되고 비만 남아 있다가 합천댐 공사가 이루어져 그 터가 수몰되자, 1988년에 묘정비를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묘정비는 크기는 가로 약 80㎝, 세로 약 180㎝, 폭 약 25㎝이다. 비석의 받침돌은 거북을 닮았으며 그 위에 있는 몸돌은 태극무늬의 직사각형이고 머릿돌이 얹혀 있다.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조식의 신도비문으로 지었고, 글씨는 그 당시 삼가현감(三嘉縣監)이었던 오철상(吳喆尙)이 해서체로 썼다. 2001년 12월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02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