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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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옥계서원(玉溪書院)
   전라남도 순천시 연향동 1097
   정지년(鄭知年) 정승복(鄭承復) 정사준(鄭思竣) 정사횡(鄭思竑) 정 빈(鄭 忄賓) 정 선(鄭 愃)
   1821년(순조 21)
   
   3월, 8월 중정(中丁)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5호(1984.02.29지정)
경주정씨 정지년(鄭知年) 등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옥계서원은 1821년(순조 21)에 성의 남쪽 장천리에 세웠다고≪순천속지≫(1881년)에 기록되어 있다. 그 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헐린 뒤 1953년 현 위치로 옮겨 다시 세웠다. 현재 이 서원에는 정지년을 주벽으로 하여 임진왜란 공신 정승복(鄭承復), 그의 아들 정사준(鄭思竣), 정사횡 鄭思竑), 손자 정빈(鄭忄賓), 정선(鄭愃) 등 6위를 배향하고 있다. 매년 3월 중정(中丁 : 두번째 丁日)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낸다.

1)주벽-정지년(鄭知年, 1395∼1462)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유영(有永), 호는 노송정(老松亭). 아버지는 염(廉)이며, 어머니는 최씨(崔氏)로 묵(默)의 딸이다. 1438년(세종 20) 하위지(河緯地)·성삼문(成三問) 등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였다. 중훈대부(中訓大夫) 성균관사예로 있을 때 단종이 손위(遜位:임금의 자리를 사양함)하자 전리(田里)로 퇴거하여 경서(經書)연구에 전념하였다. 정자 이름을 ‘노송정’이라 하고, 자호(自號)를 ‘망칠(望七)’이라 하였는데, 육현(六賢)에 하나를 첨가한다는 뜻이다. 뒤에 좌찬성에 증직되고, 계림군(鷄林君)에 봉하여졌다. 남원 덕암서원(德巖書院), 순천 옥계사(玉溪祠), 공주 숙모전(肅慕殿)에 배향되었다. 그에 대한 ≪노송실기≫가 있다.
 
2)정승복(鄭承復, 1520~1580)
자는 경윤(景胤)이며 호는 옥계(玉溪)로서 정지년의 후손(後孫)이다. 1544년(중종 39)에 무과(武科) 별시(別試)에 1546년 중시(重試)에 급제하여 옥구현감(沃溝縣監)을 을묘(乙卯) 왜변시 추자도에서 전공(戰功)을 세워 웅천(熊川), 영덕(盈德) 현령을 거처 함흥판관(咸興判官) 재직시(在職時)(1563) 장자상(長子喪)을 입고 환가(還家) 옥천변(玉川邊)에 옥계정(玉溪亭)을 짓고 경서(經書)에 몰두하였다. 순조 임신(純祖 壬申)에 가선대부병조참판겸(嘉善大夫兵曹參判兼) 동지(同知) 의금부사훈련원도정(義禁府事訓練院都正)가증(加贈)
 
3)정사준(鄭思竣, 1553~ ?)
판관(判官) 승복(承復)의 자(子). 호(號)는 성은(城隱). 선조 갑신(宣祖 甲申)(1584)에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며 1592년 임란(壬亂)이 발발하자 이순신 군관으로서 조총(鳥銃)을 제작하고 전공(戰功)을 세워 후일 결성(結城)현감을 하였다.순조 임신(純祖 壬申)에 가선대부병조참판가증(嘉善大夫兵曹參判) 가증(加贈)
 
4)정사횡(鄭思竑)
정사준의 동생으로 자는 여인(汝仁)이다. 호는 매헌(梅軒). 임진왜란 초 의주로 조카인 정빈과 함께 곡식 1000여석을 운반하였고 정유재란 때에도 군량을 모으는데 큰 공을 세웠다. 후일 연천·안음현감 1801년에 증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를 지냈다.
 
 
 
5)정빈(鄭忄賓, 1566~1640)
정사익의 아들로서 자는 공백(伯恭), 호는 곡구(谷口)이다. 안방준(安邦俊)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27세의 나이로 숙부들과 같이 가동 3백명을 거느리고 곡식 천여석을 순천에서 배에 싣고 의주 왕(王)에게 전하니 충절(忠節)에 감복한 선조(宣祖)는 사온서 봉사(司醞署 奉事)에 임명하였다. 그 후 낭천·직산·아산 현감(稷山 ‧ 牙山縣監)을 역임하였고 1801년(순조 1)에 통정대부(通政大夫)·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추증되었으며 선무원종이등공신(宣武原從二等功臣)에 책록되었다.
 
6)정선(鄭愃)
자(字)는 관중(寬仲), 본관은 경주(慶州), 현감(縣監) 사준(思竣)의 아들이다. 무과(武科)하여 선조(宣祖)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선전관(宣傳官)으로 왕(王)을 의주까지 호위하고 군량을 운반했기에 훈련원(訓練院) 부정(副正)으로 임명되고 이충무공(李忠武公)순신(舜臣)을 따라 전공(戰功)이 많았기에 선무원종 공신 3등에 록훈 1801년 증가선대부병조참판.

옥계서원은 서남쪽으로 비교적 완만한 경사의 대지 위에 있다. 외삼문인 소취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경행당이 있고 왼편에 고직사,오른편에 옥계서원의 강당인 옥계원, 그 뒤편에 내삼문인 세충문, 신실인 옥계사 등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규모이다.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건물로서 전면 툇칸에 툇마루를 깔고 중앙칸을 대청으로 하였으며, 좌·측 칸은 온돌을 깔았다.


참고-순천시사
전라남도·호남문화연구소 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