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서원은 고정산 줄기가 이어지는 중간쯤 위치해있다. 앞으로는 들을 가로질러 연산천이 흐르고 뒤로는 고정산 줄기가 형성하는 배산임수 형국을 하고 있다. 평지에 전학후묘식으로 배치하였으나 전면에 위치한 강당이 중심축에 놓이지 않고 약간 서측으로 비켜 직각배치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묘당공간은 제일 북편에 사괴석 담으로 둘러두고 전면의 강학공간은 응도당(凝道堂)을 비롯하여 양성당(養成堂), 정의당(正義堂), 장판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학공간의 동측에는 앞에 수직사 공간을 두고, 뒤에 사마재를 두고 있다.
돈암서원은 평지에 위치함으로써 건물배치는 여유 있게 했으나 다른 측면으로 보면 배치의 질서가 조금 산만한 듯 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유경사(惟敬祠)-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155호(2000.01.11지정)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전면열은 퇴칸이고 우면 2열은 내부공간을 꾸며 김장생, 김집, 송준길, 송시열 네 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사당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공포의 짜임새가 큰 건물 못지않다. 그것은 처마의 높이를 기둥으로 해결하지 않고 구조적인 아름다움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당에서처럼 작은 규모에서 첨차를 2중으로 올린 공포는 흔치 않다. 또한 세부적인 조각에도 장식성이 강한 요소들을 응용하는 것은 사당의 위계를 높이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2)응도당(凝道堂)-보물 제1569호(2008.07.10지정)
서원이나 향교에서 강학공간으로 사용하는 강당이 사당 방향과 직각으로 배치되는 예는 그리 흔치 않다. 응도당(凝道堂)은 강학공간에서 전면에 직각방향으로 틀어져 배치되어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내부는 모두 마루를 깔았다. 후면 열 양측 면에는 문을 달아 마루방을 꾸몄는데 남측에 2칸, 북측에 1칸을 두었다.
돈암서원이 현재의 위치로 1880년 이건될 당시 응도당(凝道堂)은 구터에 남아 있다가 1971년 이건, 개와중에 “숭정 6년 계유(癸酉) ”명문이 있어 인조 11년(1633)의 초창기의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돈암서원의 건물배치와 규모는 여러 기록에서 사계 김장생이 고례(古禮)를 이어받아 생전에 주자대전(朱子大典)을 고증하여 강경에 황산(죽림)서원을 창건했던 규례를 이은 것이라고 한다(원정비문 참조).
조선후기 서원의 문화사적 성격 중 장수강학(藏修講學)의 강당(講堂)으로 보기 드물게 큰 규모와 옛 규제를 충실히 따른 건물로서 중요하다.
3)양성당(養成堂)
사당 바로 앞에 배치되어 있는 양성재는 ‘거경재(居敬齋)’라고도 한다.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각 칸을 하나씩의 방으로 꾸미고 가운데 3칸 전면에는 퇴칸을 만들어 마루를 깔고 후면에는 쪽마루를 달았다. 양측면의 1칸통은 각각 큰 온돌방이다.
4)정의당(正義堂)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후면 열 가운데 2칸은 마루방을 두었다. 1고주 5량집 구조에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장대석 외벌대로 기단을 만들고 바닥에는 전을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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