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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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용연서원(龍淵書院)
   울산광역시 남구 신정동 1412-10번지
   학파 이예(鶴坡 李藝)
   1737(영조 13)
   
    음력 2월 23일 기일(忌日)
   
 
 
1737(영조 13)에 도(道) 유림의 공의에 의해 황용연(黃龍淵) 위에 용연사(龍淵祠)가 창건되어 충숙공(忠肅公) 학파 이예(鶴坡 李藝)를 배향하였으며, 1782년(정조 6)에 웅촌 석천리로 이건되어 사호(祠號)를 석계라 하였다. 1860년(철종 11)에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868년(고종 5) 훼철되었고, 1900년(광무 4) 9월 9일에 설단하여 그 후 매년 9월9일에 향사를 봉행하여 왔으나 2001년 3월에 옛 용연사(龍淵祠) 유허지(遺墟地)에 울산 향유의 공의와 월진문회(越津門會) 주도로 용연서원(龍淵書院)을 복원하여 음력 2월 23일 기일(忌日)을 기하여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1)주벽-이예(李藝, 1373∼1445)
용연서원2.jpg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本貫)은 학성(鶴城), 호(號)는 학파(鶴坡). 원래 울산군의 기관(記官) 출신인데, 1396년(태조 5) 왜적에게 잡혀 간 지울산군사 이은(李殷) 등을 시종한 공으로 아전의 역에서 면제되고 벼슬을 받았다.
 
1401년(태종 1) 회례사 윤명을 수행 일기도(一岐島)에 사신으로 가 포로 50명을 데려온 공으로 좌군부사직(左軍副司直·종 5품)에 제수되었다.
 
그 뒤 1410년까지 10년 동안 해마다 통신사가 되어 삼도에 왕래하면서 포로 500여명을 찾아오고, 벼슬도 여러 번 승진되어 호군(護軍:정4품)이 되었다. 1416년 유구국(琉球國)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포로 44명을 찾아왔고, 1419년(세종 1) 중군병마부수사(中軍兵馬副帥使)가 되어 삼군도 체찰사 이종무(李從茂)를 도와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하기도 하였다.
 
1422년(세종 4)에는 회례부사(回禮副使)로, 1424년(세종 6) 대호군(大護軍:종 3품)으로 승진 회례부사(回禮副使)로, 1428년(세종 10)통신부사(通信副使)로, 1432년(세종 14)에는 상호군(上護軍:정 3품)으로 회례정사(回禮正使)가 되어 일본에 다녀왔다.
 
1438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정 3품)로 승진한 뒤 대마도 경차관이 되어 대마도에 다녀왔다. 왜적에게 잡혀 간 포로 7명을 쇄환해 오고, 왜적 14면을 데리고 왔다. 그 공로로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승진하였다. 조선 초기에 사명으로 일본에 다녀온 것이 모두 40 여 차례나 되었다.
 
그간 대마도주를 회유하여 왜구의 침입을 막고, 또한 문인제도(文引制度:비자제도)를 확립하여 왜인들의 입국을 통제하였으며, 1443년(세종 25년)에는 대마도주 종정성과 계해조약(癸亥條約)을 체결하였고, 일본의 발달된 문물인 자동물레방아, 병선모방건조,광물자유체취, 국방에 긴요한 화통과 완구를 무쇠로 제조하는 방법, 사탕수수재배와 화폐의 광범위한 사용 등을 임금에게 건의 하여 내치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우리나라의 인쇄술과 저서, 불교서적 등을 일본에 전파하는 등 문화교육에도 노력하였다. 저서로 학파실기(鶴坡實紀)가 있다. 시호(諡號)는 충숙(忠肅)이시다.
 
2005년 2월 1일 문화관광부에서 “2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10년에는 외교통상부에서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로 선정되었다.

2001년에 옛 용연사(龍淵祠)의 유허지(遺虛地)에 복원하였으며, 묘우(廟宇)는 상충묘(尙忠廟)이며, 존영(尊影) 및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으며, 내삼문(內三門)은 선인문(宣仁門)이라 하고, 서원의 정당인 강당을 양성당(養性堂)이라 하였다.
 
또한 동재를 명성재(明誠齋), 서재를 온고재(溫古齋)라 하고 외삼문(外三門)을 추인문(追仁門)이라 하였다.
 
서원 내에 세워진 충숙공학파이선생신도비(忠肅公鶴波李先生神道碑)는 전 성균관 전의이신 합천(陜川) 이상학(李相學)선생이 찬하고 역문하였다.
 
같은 경내에 세워진 이휴정(二休亭)은 정면 삼칸 측면 2칸의 익공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지붕은 네 모퉁이에 추녀를 단 팔작지붕에 겹처마로 이었고, 마루에는 계자난간을 둘렀다. 이 건물은 울산광역시(蔚山廣域市) 문화재자료(文化財資料)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