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허유전(許有全, 1243~1323)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초명은 안(安). 충주사록(忠州司錄) 연(延)의 아들이다.
원종 말기에 문과에 급제, 1295년(충렬왕 21) 감찰시사(監察侍使)로 있을 때 왕의 총신의 참소를 받아 순마소(巡馬所)에 감금되어 죽임을 당할 뻔하였으나 당시 순마지유(巡馬指諭) 고종수(高宗秀)의 변호로 풀려났다.
1298년 국학사예(國學司藝)로서 전라도안렴사가 되고, 1304년에 감찰대부 권수동지밀직사사(監察大夫權授同知密直司事)가 되었다. 1307년에 밀직사사로서 지공거가 되어 안분(安奮) 등 33인을 선발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 승진되어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지밀직사사를 역임하였다. 1303년에 여러 대신들이 세자 충선을 폐할 것을 주청하였으나 그는 박경량(朴景亮)·유복화(劉福和) 등과 함께 이를 반대하여 세자의 위(位)를 보전하였다.
이에 충선왕이 즉위하자 교서를 내려 포상하였다. 1314년(충숙왕 1)에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지고 단성수절공신(端誠守節功臣)의 호를 받았다. 1321년 수첨의찬성사(守僉議贊成事)에 이어 정승이 되었다.
이 해에 원나라 티베트〔土藩〕에 귀양간 상왕〔忠宣王〕의 환국을 위하여 81세의 고령으로 민지(閔漬) 등과 함께 원나라에 갔으나 심양왕 고(瀋陽王 暠)와 그 일파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2)허득량(許得良, 1597~1637)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국필(國弼), 호는 상무헌(尙武軒). 할아버지는 직장 승립(承岦)이다.
일찍부터 학문에 힘써 김상용(金尙容)·김상헌(金尙憲)으로부터 배우다가 붓을 던지고 병서를 탐독하고 스스로 ‘상무헌’이라 일컬었다. 1620년(광해군 12) 무과에 급제하고, 오위도총부도사·겸훈련원부정이 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수문장 겸 금군별장이 되어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3등에 녹훈되고, 절충장군에 올라 부호군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제(從弟) 복량(復良)과 함께 민병 수백명을 거느리고 병마절도사 민영(閔栐)의 진에 들어가 광주쌍령(廣州雙嶺)에서 많은 적병을 죽이고 전사하였다. 1652년(효종 3)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대구의 용강서원(龍岡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상무헌유고≫가 있다.
3)허복량(許復良, ?~1636)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운로(雲老)이다. 김상용(金尙容)·김상헌(金尙憲)의 문인이다. 관이 부총관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형 득량(得良)과 함께 광주(廣州) 쌍령(雙嶺)에서 경상우도병마절도사 민영(閔栐)의 진(陣)에 나아가 청군과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대구의 용강서원(龍岡書院)에 제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