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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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9대서원 - 무성서원!


 
작성일 : 12-11-08 18:00
전라북도에서 유일한 불훼철(不毁撤) 서원인 무성서원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9,744  



전라북도에서 유일한 불훼철(不毁撤) 서원인 무성서원 전경,
무성서원은 "신라후기의 최치원(857∼?)과 조선 중종(재위 1506∼1544)때 관리였던 신잠(申潛)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서원으로,
교육기능과 제사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원래는 태산서원이라 하던 것을 숙종 22년(1696)에 임금으로 부터 이름을 받아 무성서원이라 하게 되었다.
앞에는 공부하는 공간을 두고, 뒤에는 제사 지내는 사당을 배치한 전학후묘의 형식이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사당, 현가루, 동·서재, 비각, 명륜당 등이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로 성종 15년(1484)에 세웠고,
문루인 현가루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2칸·옆면 2칸의 팔작지붕 집이다.

이곳에는 성종 17년(1486) 이후의 봉심안, 강안, 심원록, 원규 등의 귀중한 서원자료가 보존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남아있던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문화재청>





전북 정읍 칠보면 무성리에 있는 무성서원 주차장,
주변에는 솟대가 세워져 있었고 개울 건너에 무성서원의 홍살문이 보입니다.


무성서원 홍살문,
홍살문을 너머로 무성서원이 보입니다.
무성서원의 문루인 현가루(絃歌樓, 3칸 2층 건물),
곱게 단청을 한 현가루는 <논어>의 양화편(陽貨篇)에 나오는
"공자께서 무성에 가셔서 현악에 맞추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셨다<子之武城 聞絃假之聲>"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현가루 2층 내부에 그곳에서 조망한 풍경이 시원스럽습니다.

『정읍 무성서원(井邑 武城書院)』
<사적 제 166호, 1968년 12월 19일 지정; 최치원과 신잠을 향사하기 위하여 세운 사원>
전북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500 | 탐방일; 2012. 09. 19(수), 정읍 문화유적 탐사
최치원 초상,
추야우중(추야우중) | 고운 최치원
추풍유고은 깊은 가을 바람에 외로은 마음을 읊조리나니
세로소지음 세상에 그를 알이주는 이 없네
창외삼경우 창 밖에 밤 늦돌고 비 내리는데
등전만리심 등불 앞의 마음은 만리 밖을 달리네
"신분 제도가 철저한 시개에 6두품으로 태어나 본인의 능력을 펼치고자 하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홀로 시를 남겨서 마음을 달래는 시입니다."
<길짜라 마음따라 알콩달콩 정읍이야기, p165, 정읍시청, 2011>


현가루 아래에서 바라본 '武城書院'이란 사액 현판이 걸려있는 강당,

당초 무성서원은 신라 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태산(泰山, 현 태인) 태수로 재임 시
선정을 베풀고 많은 치적을 남기고 떠나자 주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짓고 태산사(泰山祠)라고 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무성서원은 1696년(숙종 22)에 '武城書院'이라는 사액을 받았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선생을 추가 배향하였습니다.


강당의 내부 모습,
현가루 오른쪽에서 바라본 무성서원 강당,
다른 장소에서 본 강당 전경,


사당으로 가는 내삼문과 사당 전경,
내삼문 양 기둥에는 각각 "성조액은(聖朝額恩)"과 "사림수선(士林首善)"이라 쓴 주련이 걸려 있습니다.

무성서원의 사당인 태산사(泰山祠),

사당 뒤켠에서 바라본 무성서원 전경,


무성서원에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노거수들이 참 많습니다.


사당 옆 담장 너머에 있는 강수재(講修齋),


강수재 내부 전경,

병오창의기적비(丙午倡義紀蹟碑)가 세워져 있는 항일투쟁 현장,
무성서원은 을사늑결(乙巳勒結) 이후 이 고장 800 명의 의사(義士)들이
1906년 6월 12일(丙午, 음력 윤 4월 21일) 항일의 횃불을 높이 들고 의병을 일으킨 병오창의(丙午倡義)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서원 서쪽에 세워져 있는 '현감 서호순 불망비(縣監徐侯灝淳不忘碑, 1849년 건립, 앞쪽)' 입니다.

무성서원비석군
사적 제166호로 지정된 무성서원(武城書院) 외삼문 밖에 있는 비석군(碑石群)으로, 현감들의 선정비와 무성서원 관련 비석들로 이루어져 있다.

1882년(고종 19) 건립한‘영상 이최응 불망비(領相李公最應不忘碑)’는 높이 121cm·폭 40cm·두께 20cm로, 지붕돌을 갖추고 있다. 무성서원은 흥선대원군의 형으로 영의정을 역임하였던 이최응(李最應 1815~1882)의 도움으로 서원철폐령을 피할 수 있었는데 이 비석은 그 공적을 기려 세운 것이다.

[출처] 무성서원 비석군 | 두산백과
무성서원 외삼문 밖에는 선정비와 무성서원 관련 비석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위 비석은 1882(고종 19)에 건립한 '영상 이최응 불망비(領相李公最應不忘碑)'로
높이 121cm·40cm·두께 20cm, 지붕돌을 갖추고 있습니다.
무성서원은 흥선대원군의 형으로 영의정을 역임하였던 이최응(1815~1882)의 도움으로 서원철폐령을 피할 수 있었는데
이 비석은 그 공적을 기려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무성서원 전경,